https://blog.naver.com/jongtac21/224198904300집값이 달아오르면 정부는 늘 같은 처방전을 꺼낸다. 공급 늘리겠습니다.
이 말은 부동산 세계의 진통제다. 효과는 있다. 다만 환자가 낫기 전에 약이 먼저 떨어진다.
주택은 공장에서 찍는 제품이 아니다. 버튼 누르면 나오는 자판기도 아니다. 땅을 묶고 허가를 묶고 시간을 묶어 두었다가 가격이 오르면 그제야 풀겠습니다라고 한다.
이미 불은 번졌는데 소화전 위치를 논의하는 꼴이다. 정책은 늘 수요를 훈계한다. 투기 수요를 억제하겠다. 그런데 시장은 묻는다. 20억짜리 집을 사는 사람이 투기인가? 거주인가?
그 가격을 감당하는 순간 그는 이미 이 시장의 상주 인구다. 투기꾼이라 부르기엔 너무 오래 살 생각인 사람들이다.
가격은 도덕으로 오르지 않는다. 부동산에는 선악이 없다. 있다면 단 하나 그것은 바로 희소성이다.
집이 없어서 오르는 시장을 심리라 부르는 순간 정책은 현실을 놓친다.
심리는 불을 키우지만 불씨는 늘 부족한 물건이다. 그래서 묘한 장면이 반복된다.
공급을 묶어 가격을 올린 뒤 공급을 약속해 가격을 잡겠다고 말한다. 발열의 원인을 만든 뒤 해열제 광고를 하는 구조다.
시장은 솔직하다. 없으면 오른다. 있으면 멈춘다. 이 단순한 문장을 정책만 복잡하게 번역한다.
결국 사람들은 안다. 나중에 공급은 지금은 없다의 속뜻을 가지고있다. 그래서 지금 산다. 지금 버틴다. 지금 경쟁한다.
집값을 움직이는 건 투기냐 실수요냐의 윤리 논쟁이 아니다. 있느냐 없느냐의 물리다.
정권은 바뀌지만 이 공식은 안 바뀐다. 집은 부족할 때 오르고 부족할수록 더 오른다.
그리고 늘 공급 발표보다 부족이 먼저 도착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