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blog.naver.com/jongtac21/224186826431요즘 도시의 풍경은 이상하다. 젊은 얼굴이 고급 현관 앞에 서 있다. 나이와 평형이 어울리지 않는 장면 그러나 더 이상 놀라운 일도 아니다.
그들은 빠르다. 부모의 시간을 등에 업고 미래를 선불로 끌어다 쓴다. 사다리가 무너지기 전에 가능한 이들은 이미 올라탔다.
하지만 같은 또래의 다른 절반은 지도에서 출구를 잃었다. 같은 시대를 살지만 출발선은 애초에 달랐다. 누군가는 열쇠를 쥐고 누군가는 포기 각서를 쓴다.
능력의 문제가 아니다. 혈통의 문제다. 이쯤 되면 선택이 아니라 계보가 된다.
정치는 이 장면을 다정한 말로 덮는다. 빌려주겠다고 기다리면 된다고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그러나 그 말의 번역은 간단하다. 뛰지 말고 여기서 숨 고르라.
그 사이 자본은 달린다. 쉬지 않고 미안함은 1도없다. 부유한 집의 자녀는 노력 위에 날개를 달고 그렇지 못한 이들은 노력 위에 모래주머니를 맨다.
포퓰리즘은 연고를 바르듯 잠시 통증을 가릴 뿐 근육을 키우지는 않는다. 면역은 떨어지고 격차는 굳어진다.
이제는 양극화라는 말조차 부족하다. 층은 갈라졌고 연결 통로는 무너졌다. 오르지 못한 것이 아니라 애초에 오를 수 없도록 설계된 구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젊은 세대는 멈추지 않는다. 배우고 계산하고 준비한다. 무장한 기성세대를 넘어서기 위해 더 날카롭게 진화한다.
그들은 게으르지 않다. 오히려 지나치게 성실하다. 문제는 성실이 더 이상 보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아이와 청년을 막다른 길로 몰아넣는 사회는 미래를 담보로 현재를 연명하는 사회다.
그래서 어떤 이는 손에 기술을 쥐여주고 스스로 설 수 있게 돕는다. 직함이 아니라 생존력을 남겨준다. 희망은 말이 아니라 구조로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 공은 기성세대의 발앞에 떨어졌다. 사다리를 걷어찰 것인가 아니면 다시 세울 것인가? 젊은 세대는 이미 준비되어 있다.
문제는 우리가 그들에게 오를 수 있는 높이를 허락할 용기가 있는가다.
이건 청년의 문제가 아니라 어른의 책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