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년 발생한 **'아약스 작전(Operation Ajax)'**은 현대 중동 역사, 특히 미국과 이란 관계를 이해하는 데 가장 결정적인 사건입니다. 단순히 한 나라의 정권이 바뀐 것을 넘어,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를 서구 정보기관이 뒤엎은 대표적 사례로 꼽힙니다.
사건의 흐름을 단계별로 자세히 정리해 드립니다.
1. 배경: 석유를 둘러싼 갈등 당시 이란의 석유 자원은 영국의 **AIOC(영국-이란 석유 회사, 현 BP의 전신)**가 독점하고 있었습니다. 이란 국민들은 자기 땅에서 나는 기름인데 정작 수익은 영국이 대부분 가져가는 상황에 분노했습니다. * 모사데그의 등장: 1951년, 민족주의 성향의 모함마드 모사데그가 총리로 취임합니다. * 석유 국유화: 그는 취임 직후 석유 산업의 국유화를 선언합니다. 영국은 이에 반발해 이란 석유 금수 조치를 내리고 경제 봉쇄에 들어갔습니다.
2. 영국의 제안과 미국의 개입 영국은 독자적으로 모사데그를 축출하려 했으나 실패하자, 미국을 끌어들입니다. * 냉전의 공포 활용: 처음엔 시큰둥하던 미국은 영국의 **"모사데그를 내버려 두면 이란이 공산화(소련 편)될 것"**이라는 설득에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 작전 수립: 미 CIA와 영국 MI6가 합작하여 모사데그를 몰아내고 친미 성향의 국왕(샤)인 팔레비에게 전권을 실어주려는 **'아약스 작전'**을 설계합니다.
3. 작전의 전개 (1953년 8월) CIA 요원 커밋 루스벨트(테디 루스벨트 대통령의 손자)가 현지에서 작전을 지휘했습니다. * 여론 조작: CIA는 막대한 자금을 풀어 이란 언론에 모사데그를 비방하는 기사를 싣고, 가짜 시위를 조직했습니다. * 매수와 폭동: 군부 요인들을 포섭하고, 깡패 조직까지 동원해 거리에서 유혈 폭동을 일으켜 사회 혼란을 극복하지 못하는 무능한 총리 프레임을 씌웠습니다. * 쿠데타 성공: 초기 실패로 국왕이 해외로 도망치기도 했으나, 결국 8월 19일 친위 쿠데타 세력이 총리 관저를 습격하며 모사데그를 체포하는 데 성공합니다.
4. 아약스 작전의 결과와 여파 이 사건은 '단기적 성공, 장기적 재앙'의 교과서가 되었습니다. * 왕정 복구: 도망갔던 팔레비 국왕이 복귀하여 절대 권력을 휘두르는 독재 체제를 구축했습니다. * 미국에 대한 불신: 이란인들에게 미국은 '민주주의의 수호자'가 아닌, **'민주 정부를 파괴한 제국주의 국가'**로 각인되었습니다. * 1979년 혁명의 불씨: 25년 뒤 발생한 이란 혁명 당시, 시위대들이 미 대사관 인질 사건을 일으킨 명분 중 하나가 "또다시 아약스 작전 같은 쿠데타를 모의할지 모른다"는 공포 때문이었습니다.
정리하자면: 아약스 작전은 미국의 중동 개입 역사에서 가장 뼈아픈 실책 중 하나로 평가받으며, 2013년 CIA는 공식 문서를 통해 이 사건에 개입했음을 공식 인정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