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blog.naver.com/jongtac21/224191784880어릴 적 어른들에게서 배운 빚은 항상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통장에 찍힌 마이너스는 사람의 체면보다 낮은 위치에 있었고 상환 완료는 인생의 졸업장이었다.
빚을 다 갚았다는 말에는 노동의 연대기와 절제의 연대가 붙어 있었다. 그런데 세상 어딘가에서는 정반대의 장면이 벌어진다.
어떤 사람들은 돈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시간이 부족해서 빚을 낸다. 이 차이는 단순한 규모의 문제가 아니다.
한쪽의 부채는 이미 지나온 삶을 증명하기 위해 생기고 다른 쪽의 부채는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당겨오기 위해 생긴다.
전통적인 대출은 당신은 성실했으니 갚을 수 있습니다라는 문장으로 승인된다. 거대 자본의 대출은 당신의 미래는 커질 것이니 지금 빌려드립니다라는 문장으로 승인된다.
과거 담보와 미래 담보 같은 돈이지만 시간 방향이 반대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에게 이자는 시간이 흐르는 소리다.
내일이 올수록 더 무거워지는 무게 하지만 어떤 사람에게 이자는 시간을 앞당기는 장치다. 늦게 도착할 세계를 지금 열어젖히는 비용이다.
보통 사람은 시간을 벌어서 돈을 만든다. 하루를 일하고 그 하루만큼의 결과를 받는다. 직선의 삶이다.
레버리지를 쓰는 사람은 돈으로 시간을 산다. 내가 살지 않은 시간 내가 일하지 않은 시간 내가 만나지 않은 기회를 한꺼번에 현재로 불러온다. 삶이 병렬로 확장된다.
그래서 빚에 대한 감정도 갈라진다. 어떤 사람에게 부채는 미래를 저당 잡힌 계약서고 어떤 사람에게 부채는 미래를 선점한 영수증이다.
결국 차이는 하나다. 빚이 나를 끌고 가는가? 내가 빚을 끌고 가는가?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는 말은 절반만 맞다.
육체의 시간은 평등하지만 자본의 시간은 복제된다. 돈은 노동이 굳어진 형태고 부채는 미래가 액화된 형태다. 그래서 누군가는 평생을 모아 한 채를 사고 누군가는 한 번의 확신으로 도시를 산다.
어린 시절 보았던 빚은 등에 지는 짐이었지만 지금 세계 어딘가의 빚은 등 뒤에서 밀어주는 추진력이다. 결국 질문은 이것뿐이다.
나는 시간을 저축하며 사는가? 아니면 시간을 끌어와 쓰며 사는가? 빚은 도덕이 아니다. 도구다.
족쇄가 될지 가속기가 될지는 그 돈이 아니라 그 돈이 향한 시간의 방향이 결정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