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blog.naver.com/jongtac21/224187207346올해 초부터 지금까지 임대료는 숨 가쁘게 치솟았다. 숫자만 놓고 보면 이건 상승이 아니라 기어이 다른 국면으로 넘어갔다는 신호다.
그런데 진짜 공포는 이미 지나간 속도가 아니라 앞으로도 멈출 이유가 없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전세가 월세로 바뀌어 서민의 허리가 휜다고 하지만 솔직히 말해 이건 아직 예열 단계다.
지금 벌어지는 일은 정책의 감정적 결과가 아니라 구조가 필연적으로 도출한 결론에 가깝다. 집을 사기 어렵게 만들면 사는 사람은 줄어들지 않는다.
대신 빌리는 사람이 늘어난다. 문제는 그 임차 수요를 흡수하던 전세라는 완충 장치가 정책의 이름으로 해체되고 있다는 점이다.
선택지가 사라진 시장에서 가격은 협상이 아니라 통보가 된다. 전세가 증발한 자리엔 월세만 남고 경쟁이 사라진 곳에 상한선은 의미를 잃는다.
한때 우리나라는 주거비가 유난히 낮은 나라였다. 그 기적의 원인은 제도였고 그 제도의 이름은 전세였다. 이제 우리는 그 장점을 투기의 부산물로 오해한 채 스스로 무너뜨리고 있다.
처음의 명분은 늘 고결했다. 투기를 막고 집 없는 사람을 보호하겠다는 말.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정책의 칼날은 늘 가장 약한 곳으로 향한다.
임대차 제도는 한 번의 불씨로 형태를 바꿨고 공급은 동시에 막혔다. 이건 실수가 아니라 구조적 합작이다. 결과는 당연했다.
전세는 반쯤 죽고 월세는 완전히 살아났다. 앞으로도 흐름은 바뀌지 않는다. 보증금으로 버티던 시장이 수익률 중심으로 재편되면 임대료는 세금과 비용 그리고 기대 수익을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
예전엔 가격 상승에 기대던 물량이 임대 시장의 숨통을 틔워줬지만 지금은 모든 부담이 직접 청구된다. 이렇게 월세가 올라도 임대인의 수익은 여전히 크지 않다.
지금의 임대료조차 시장 논리로 보면 싸다. 이 말이 불편하다면 그건 현실이 아니라 현실을 직시하는 게 불편한 것이다.
우리는 이미 청구서를 받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누군가는 또 다른 규제를 외칠 것이다. 가격을 눌러 결과를 지우려는 시도는 항상 더 큰 폭발을 준비해왔다.
양극화를 막는 방법은 사실 복잡하지 않다. 집의 개수가 아니라 집의 무게를 기준으로 삼으면 돈은 흩어지고 지역은 숨을 쉰다. 하지만 그 선택은 항상 미뤄진다. 이유는 단순하다.
결정권자의 주소는 늘 한쪽에 몰려 있으니까. 이제 흐름은 새 국면에 접어든다. 긴 왜곡의 끝에서 되돌림은 시작된다. 그 반작용은 조용하지 않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