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blog.naver.com/jongtac21/224036975612나는 오늘도 거울 앞에 선다. 그 거울은 얼굴을 비추지 않는다. 대신 신용점수의 윤곽선을 그린다. 서정주시인은 한때는 나도 누군가의 자식이었다고 했지만 오늘의 인간은 누군가의 아들이 아니라 은행의 호(구고)객 한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하나의 계좌번호다. 한국은 IMF 이후 빚을 죄로 배웠다. 빚쟁이는 수치였고 부채는 단지 그 죄의 한자 표기였다. 그러나 그것은 오해였다. 빚은 도덕의 언어이고 부채는 문명의 언어다. 도덕이 인간을 구속했다면 금융은 인간을 확장시켰다. 신용은 그 둘 사이에 피어난 제3의 문명이다. 대출은 불안의 쇠사슬이 아니다. 그것은 시간을 거래하는 계약서다. 돈을 빌린다는 건 미래를 선불로 사는 일이다. 그는 내일을 담보로 오늘을 산다. 자본주의는 그를 빚쟁이라 부르지 않는다. 투자자라 부른다. 그러나 정부는 여전히 땀만이 정의라 말한다. 근로는 신성하고 이자는 불로소득이라 한다. 하지만 진정한 불공정은 땀의 양이 아니라 출발선의 좌표다. 누군가는 부모의 신용으로 출발하고 누군가는 대출조차 불가능한 인생으로 출근한다. 서정주시인은 내 속엔 내가 너무 많아라 했듯 우리 안에도 두 개의 경제가 있다. 노동의 나와 자본의 나 두개가 있다. 한쪽은 피로를 다른 쪽은 이자를 쌓는다. 땀만을 신성시하는 사회는 생각이 낳은 수익을 불경이라 부른다. 이제는 새로운 자화상을 그릴 때다. 근로의 초상과 자본의 초상을 나란히 걸자. 노동은 근육의 문명이고 신용은 사고의 문명이다. 부채는 짐이 아니라 시간을 증명하는 잉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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