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이번 달도 역시
영수는 가계부를 덮지 못한 채 한숨을 쉬었다. 숫자는 깔끔했다. 너무 깔끔해서 문제였다.
26만3979엔. 그리고 그 아래, 조용하지만 단호한 표시 4만2434엔.
순자는 안경을 고쳐 쓰며 말했다.
적자가 아니라 음, 균형이 안 맞는 거지.
그걸 보통 적자라고 해.
말을 좀 예쁘게 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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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부터 두 사람은 생활비 해부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우선 식비.
그건 이미 네가 줄이고 있잖아. 거의 수행자 수준으로.
그럼 다음, 교통·통신 3만1325엔.
영수는 고개를 갸웃했다.
우린 어디 가는 것도 없는데 이건 왜 이렇게 나와?
순자는 휴대폰을 흔들었다.
당신이 보내는 재밌는 영상 때문이야.
그건 삶의 질이야.
그럼 데이터 요금은 삶의 세금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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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교양·오락 2만6538엔.
둘은 동시에 멈췄다.
우리 놀았어?
기억이 안 나.
그럼 억울한데?
순자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말했다.
아, 당신이 산 그 낚시용품.
한 번도 못 썼잖아.
그래도 마음은 낚였지?
영수는 인정했다.
그건 맞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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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열·수도 2만3540엔.
이건 줄일 수 있어.
순자가 단호하게 말했다.
어떻게?
난방 줄이면 돼.
그럼 우리가 줄어들 것 같은데
그날 밤, 두 사람은 이불을 두 겹으로 덮고 서로 붙어 잤다.
이건 절약이 아니라 협력이다.
영수가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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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의료 1만7941엔.
이건 못 줄여.
순자가 고개를 저었다.
우린 이제 고장이 나면 고치는 나이야.
교환은 안 되나?
부품도 단종됐어.
둘은 동시에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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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 1만7739엔.
이건 싸네.
대신 오래됐지.
천장에서 툭 소리가 났다.
둘은 위를 올려다봤다.
지금 떨어진 건 뭐지?
추억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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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소비 5만1341엔.
가장 큰 숫자였다.
이건 뭐야 도대체?
순자는 종이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경조사비, 선물, 작은 지출들
영수는 한숨을 쉬었다.
작은 게 모이면 큰 거네.
인생도 그렇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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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두 사람은 다시 계산을 해봤다.
줄일 건 다 줄인 것 같은데
그래도 적자네.
잠시 침묵.
그러다 순자가 조용히 말했다.
여보.
응?
우리가 줄이지 않은 게 하나 있어.
뭔데?
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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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
두 사람은 새로운 생활 방식을 정했다.
- 난방 줄이기 대신 손 잡기 - 외출 줄이기 대신 같이 걷기 - 오락 줄이기 대신 대화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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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 벤치.
영수가 말했다.
생각해보니까 우리가 쓰는 돈보다
응?
같이 쓰는 시간이 더 많은 것 같아.
순자가 웃었다.
그건 계산 안 해도 되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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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오는 길.
바람은 여전히 차가웠지만, 두 사람의 걸음은 느긋했다.
여보.
응?
다음 달도 적자면 어쩌지?
영수가 묻자, 순자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럼
응?
더 많이 웃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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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가계부는 여전히 빨간 숫자를 품고 있었지만, 그 옆에는 새로 적힌 문장이 하나 있었다.
이번 달 총수지: 돈은 적자, 마음은 흑자.
영수는 그 문장을 보고 조용히 말했다.
이건 통계에 안 나오지?
순자가 대답했다.
그래서 더 중요한 거야. |